서명
현대어서명
청구기호
寧越嚴氏三世稿
영월엄씨삼세고
古 3428-374
본문

卷首題는 ‘寧越嚴氏世稿’로‚ 表題는 ‘菊山集’으로 되어 있어‚ ‘영월엄씨세고’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으나 그 잔여분의 소재는 현재 미상이다. 다만 朴允黙(1771-1849)의 ≪存齋稿≫에 <嚴氏三世稿序>가 남아 있어‚ 원래는 春圃 嚴義吉‚ 禮窩 嚴漢賓‚ 晩香齋 嚴漢朋‚ 杏南 嚴啓昇‚ 燕石 嚴啓膺 등 三世 6인의 시고가 함께 수록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일부인 이 책은 조선후기 閭巷詩人 嚴啓興의 시집이다. 엄계흥의 字는 叔一‚ 號는 菊山이다. 명필로 유명했던 嚴漢朋의 손자이며 嚴啓昇·嚴啓膺과 함께 3형제가 모두 詩名이 있었다. 그에 대한 전기로 黃仁紀(1747-1831)의 <嚴僉知啓興傳>(≪一水然語≫)‚ 金箕書의 <嚴顚傳>(≪和蕉謾稿≫)‚ 趙熙龍(1789-1866)의 <嚴啓興傳>(≪壺山外記≫) 등이 있다. 이들 기록에 엄계흥은 성품이 억세어 구속됨이 없었고 권세있는 사람이라 하여 굽히는 법이 없었던 강직했던 인물로 그려져 있다. 여항에서 인재 교육에 많은 공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그와 가까이 지냈던 인물로는 사대부로 晉庵 李天輔(1698-1761)‚坯窩金相肅(1717-1792)‚ 沈公藝·公著 형제‚ 申錫老 등이 있으며 여항인으로는 李德涵‚ 李亶佃‚ 千壽慶‚ 金洛瑞 등과 친했는데 그는 이들 중 松石園詩社의 시인들보다는 한 세대 선배였다.이 詩集은 첫 머리에 賦 2편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시로 총 174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에는 신분적 제약에서 오는 불만과 갈등이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시풍은 朴允黙(1771-1849)이 “慷慨激切‚ 有悲歌擊筑之風”(≪存齋稿≫ 권23 <嚴氏三世稿序>)이라고 평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강원도와 함경도 일대를 여행하고 그곳의 풍물과 역사를 읊은 장편의 賦 <北征>‚ 世態를 풍자하고 여항인의 불만을 토로한 <放歌行>‚ 詩란 기교보다는 평이한 표현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역대 詩史의 변화를 읊은 < …… 仰呈沈進士景晦足下> 등이 있다.권말에 붙어있는 金洛瑞의 跋(1800년)에 의하면 1793년 김낙서가 와병중인 엄계흥을 방문하자 엄계흥은 자신의 시집 2권을 보이면서 한 권으로 精選해 달라고 했다 한다. 이 책은 이렇게 김낙서에 의해 정선된 것이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