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규장각은 1776년 세조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있는 한국 최대에 한국학 여구기관입니다.

  • 조선시대 규장각 1776~
  • 서울대학교규장각 1946~
  •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구소 1969.06~2006.01
  •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구소 2006.02~현재
  • 연도표내려받기
서울대학교의 규장각 도서 접수와 정리`

1945년 8월 광복 후 1년 후인 1946년 10월에 서울대학교가 개교하였다. 그 과정에서 구 경성제국대학이 보관해온 규장각도서도 규모나 보관 장소의 변경 없이 소관처만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바뀌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규장각도서도 큰 위기를 맞았다. 북한군의 급작스러운 남침으로 이루어진 1차 서울 점령 시에는, 규장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피난 대책이 전무했다. 그 기간 동안에 규장각도서의 일부가 포장, 반출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다행히 원상 복구되었다. 그 때 창경궁 내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되었던 왕실 도서 중 『조선왕조실록』, 통칭 적상산본赤裳山本이 북한으로 이송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하였다가 3개월 후인 1951년 1월 4일 후퇴함으로써 북한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하였다. 1.4 후퇴를 목전에 둔 급박한 시점인 1950년 12월 10일부터 28일 사이에 3차에 걸쳐 규장각도서 중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 후일 모두 국보로 지정된 전적 8,657책이 군용 트럭에 실려 전시 수도戰時首都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전란 중에 이 도서들은 포장된 채로 부산의 관재처 창고, 경남대한부인회 창고, 경남도청 창고 등을 전전하다가 정부가 환도한 지 수개월 후인 1954년 6월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서울에 남아 있던 도서들도 무사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야 규장각도서에 대한 본격적인 정리작업이 시작되었다. 1962년 11월에 규장각도서의 보존, 관리 및 활용에 대한 사항을 심의하는 규장각도서위원회가 총장 직속의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곧 『규장각도서한국본서명색인奎章閣圖書韓國本書名索引』 1부 4권이, 이듬해 1963년 8월에는 『규장각도서중국본서명색인奎章閣圖書中國本書名索引』 1부 1책이 완성되었으며, 1964년 9월부터 1966년 6월에 이르는 1년반 남짓한 기간에 소장 고문서 52,000여건이 정리되었다.
1973년부터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십칠사찬고금통요十七史纂古今通要』, 『송조표전총류宋朝標牋總類』 등의 도서가 국보로 지정되었다.

규장각도서관리실의 설치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이 확대 개편되어 명칭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그 안에 규장각 도서 전담관리 부서인 규장각도서관리실이 설치되었다. 초대 관리실장에 사서 유동렬柳東烈 서기관이 임명되었으나, 4개월 후 법과대학 박병호朴秉濠 교수가 2대 실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규장각도서의 관리책임을 교수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규장각도서는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 2층에 특별 서고를 마련하여 보관하였고,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가 구입한 고도서古圖書와 당시에 이미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어 있던 일사문고一蓑文庫, 가람문고, 상백문고想白文庫와 경제문고經濟文庫의 고도서 총합 6,380여책이 규장각도서로 분류되었고, 경복궁 회랑에 보관되었던 교서관校書館 책판 17,821장도 편입되었다. 1975년부터는 소장도서의 마이크로필름 작업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규장각도서의 정리 작업의 결과가 1970년대 후반부터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1978년 10월에 『규장각도서해제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경·자부經·子部』 1권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8권이 완성 출판되었다. 1981년에는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奎章閣圖書韓國本綜合目錄』 2권을, 이듬해는 중국본 종합목록을 출판하였다. 이 목록들은 학계에서 오랜 기간 기다려 온 듯 곧 품절되어 1983년에 재판되었다. 1977년에는 규장각 소장서에 대한 해제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학술지 『규장각奎章閣』을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규장각 소장 전적 중에서 『조선왕조실록』 등은 이미 일제강점기에 영인 출판된 적이 있었으나 극히 제한된 소수의 학자들만이 접할 수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규장각 소장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를 영인 출판 보급함으로써 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몽어류해蒙語類解』 등 몇 가지 도서를 산발적으로 영인하였지만, 규장각이 본격적으로 소장 전적의 영인 보급 사업을 추진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 첫 대상으로 『일성록日省錄』이 선정되어 1982년부터 1996년까지 15년간에 총 86권으로 완간하였다. 1986년부터는 고문서古文書 영인 출판 사업도 시작하였다.

중앙도서관에서 독립, 신축 건물로 이전

1989년에 규장각 전용 건물이 준공되어 1990년 6월에 새 건물로 이사하고, 9월에 개관식을 거행함으로써 규장각이 중앙도서관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할 터전이 마련되었다. 1992년 3월 서울대학교 설치령의 개정으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규장각도서관리실이 서울대학교 부속기관 규장각으로 독립하고, 초대 관장에 인문대학 국사학과 한영우韓永愚 교수가 취임하였다. 규장각 규정이 제정되고,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독립 기관으로서 기구가 정해지면서 도서관리와 열람 업무를 담당하는 사서와 더불어 상근 연구직 학예연구사가 임용되어 자체 인력에 의한 연구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1994년부터 서울대학교 자체 예산으로 편성되는 규장각 사업비가 대폭 증액되었고, 이보다 앞서 금호錦湖그룹에서 기금基金으로 5억원을 희사하였다. 또한 1993년부터 교육부에서 규장각을 비롯한 관련 기관을 선정하여 국학진흥을 위한 장기사업비를 계속 지원하게 된다. 사업비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소장 도서의 보급과 보존 사업을 대폭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되었고, 다수의 전문가를 동원하여 개별 도서에 대한 해제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또한 출판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각종 고지도古地圖와 의궤류儀軌類를 영인 간행하기 시작하였고, 일반 전적과 고문서들도 유별類別 총서로 기획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자연히 마멸되어 가는 지도류와 서화류의 표구表具와 훼손된 도서의 배접褙接도 1993년부터 수행하였다. 1994년에는 마이크로필름 기자재를 구입 설치하여 규장각 건물 내에서 소장도서를 촬영하고 마이크로필름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일반화에 따라 규장각도 전산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규장각의 제1차 전산화 대상은 당연히 소장도서의 목록이었다. 1997년 5월에 소장 도서 목록의 전산화를 완료하였고, 10월에는 한국본 도서해제의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하였다. 그해 11월에는 전산망(LAN) 공사가 이루어졌고, 규장각 자체의 전산실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부터 규장각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와 더불어 정보통신부가 한국전산원에 의뢰하여 추진하는 한국 역사 정보 통합시스템 구축 사업에 참여하였다. 이 사업은 관련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적을 영상(이미지) 형태로 전산화(디지털화)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전산망에 공여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인터넷으로 고전적古典籍에 접근하고 검색하도록 하기 위하여 국가가 방대한 예산으로 추진한 것이다.
규장각은 1990년대부터 시작한 각종의 대형 보급, 보존 사업을 계속 수행하는 한편, 위의 한국 역사 정보 통합시스템 구축 사업과 2002년부터 시작된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기초학문지원사업의 하나로 선정된 국학고전연구사업 및 2003년부터 시작된 토지문기土地文記 정리사업을 추진하였다.
규장각의 사업이 대폭 확대되고 수행 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 건물에서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공간의 확보가 어려워졌다. 2003년 5월에 규장각 건물의 연면적을 2배 이상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착공하여 2004년 12월에 완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