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교양총서 2009년부터 규장각에서는 '조선의 기록 문화와 법고창신의 한국학'이라는 주제로 인문한국(HK)사업단이 출범하여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단은 규장각에 넘쳐나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기록들을 통해 당시의 삶과 문화를 되살려내고,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가치와 의미를 성찰해보자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규장각 교양총서는 이런 취지의 효과적인 실현을 위한 인문한국사업단의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 교감·해설 징비록 : 한국의 고전에서 동아시아의 고전으로
  • 교감·해설 징비록

    • 저자유성룡/김시덕
    • 간행년2013
    • 책설명

      『교감·해설 징비록』은 류성룡이라는 조선의 고위 관료가 임진왜란이라는 국제전쟁의 전체 틀을 제시하고 이를 자신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기록했다는 데에 가장 중대한 의의가 있다. 류성룡은 전쟁의 원인과 전체 진행 과정은 물론, 본인과 여러 개인의 전쟁 체험까지 생생하게 담아낸다. 『징비록』이 자기 자신과 자기 집단이 맞은 존망의 위기를 겪어낸 한 인간의 회고록이자 역사서로서 위상을 차지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징비록』은 임진왜란과 관계있는 여러 나라에서 집필된 문헌 가운데 전쟁의 전체상을 가장 포괄적이면서 치밀한 구조와 생생한 문장으로 전하며 전근대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국익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적인 정치인이자 균형감각을 지닌 외교관, 난중에서의 전략과 전술을 보여준 지략가, 일본의 침략을 대비해 이순신을 발탁하고 또 임진왜란의 수습을 진두지휘하던 중에도 이미 누르하치의 여진인이 장차 위협이 되리라 예상하여 대비책을 논의한 선견지명의 지도자,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과 시대를 품은 경세가로서 류성룡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해자 김시덕은 초본과 간본 등 『징비록』의 여러 판본은 물론 임진왜란과 관련해 류성룡이 여러 문헌에 남긴 증언, 17세기 후기 일본에서 간행되어 일본과 중국에서 널린 읽힌 일본판 징비록인 『조선징비록』 등까지 검토·교감(校勘)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붙여 완결판 『징비록』을 만들어냈다.

  • 목차
  • 해제 - 『징비록』과 동아시아
    1. 『징비록』,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 = 13
    2. 『징비록』의 성립과 일본·중국으로의 전파 = 17
    3. 『징비록』의 임진왜란관 - 자기반성 사관과 이순신 사관, 또는 조선 중심 사관 = 27
    4. 국제전으로서의 임진왜란과 『징비록』의 보편성 = 35
    시대를 품은 정치가, 류성룡
    1. 류성룡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43
    2. 임진왜란 이전의 삶과 세계관 = 44
    3. 비상한 시국에 빛을 발한 국정 운영 능력 = 52
    4. 임진왜란 이후의 류성룡과『징비록』 = 66
    5. 류성룡, 시대를 품은 경세가 = 70
    범례 = 73
    류성룡 서문 = 77
    가이바라 엣켄 서문 (일본판 수록) = 83
    권1
    1. 일본국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그 나라 국왕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국서를 가지고 오다 = 99
    2. 일본국 사신 소 요시토시가 오다 = 107
    3. 신묘년 봄에 통신사 황윤길·김성일 등이 일본에서 돌아오다 = 113
    4. 왜의 국서에 "군대를 이끌고 대명국으로 뛰어들어 가겠다"라는 말이 있었다 = 120
    5. 왜의 침략을 우려한 조정이, 변경 방비에 대하여 잘 아는 신하를 뽑아 충청·전라·경상 삼도를 순찰하고 방비하게 하다 = 131
    6.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발탁하다 = 135
    7. 임진년 봄에 신립과 이일을 나누어 보내어 변경 지역의 준비 상황을 돌아보게 하다 = 142
    8. 경상우병사 조대곤을 교체하고 특지를 내려 승지 김성일이 이를 대신하게 하다 = 146
    9. 4월 13일에 왜군이 국경을 넘어 부산포를 함락시키다 = 148
    10. 4월 17일 이른 아침에 처음으로 변경의 보고가 조정에 도착하다 = 162
    11. 경상우병사 김성일을 체포하여 하옥시키려 하였지만, 그가 체포되어 오는 도중에 그의 죄를 용서하고 도리어 초유사로 임명하다 = 169
    12. 첨지 김륵을 경상좌도 안집사로 임명하다 = 173
    13. 적이 상주를 함락시키고 순변사 이일의 부대가 패하다 = 175
    14. 우의정 이양원을 수성대장에, 이진과 변언수를 각각 경성좌위장과 경성우위장에,상산군 박충간을 경성순검사에 임명하여 도성을 수축하게 하고, 상중이던 김명원을 도원수에 임명하여 한강을 지키게 하다 = 183
    15. 대신들이 세자를 세워서 인심을 모으자고 청하니 임금께서 이에 따르시다 = 186
    16. 동지중추부사 이덕형을 왜군에 사신으로 보내다 = 189
    17. 화성이 남두를 침범하다 = 196
    18. 적병이 충주에 들어오니 신립이 맞서 싸웠지만 패하여 전사하고 아군은 크게 무너지다 = 198
    19. 4월 30일 새벽에 어가가 서쪽으로 피난을 떠나다 = 204
    20. 삼도 순찰사의 부대가 용인에서 패하다 = 222
    21. 부원수 신각이 양주에서 적과 싸워 적을 패퇴시키고 적병 육십여 명의 목을 베었지만, 조정은 선전관을 보내 군중에서 신각을 참수하다 = 226
    22. 지사 한응인에게 평안도 강변의 정예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임진강으로 가서 적을 무찌르게 하다 = 230
    23. 한응인과 김명원의 군대가 임진에서 무너지고 직은 강을 건너다 = 232
    24. 적병이 함경도에 들이오니 두 왕자가 직중에 억류되다 = 236
    25. 이일이 평양에 도착하다 = 248
    26. 요동도사가 진무 임세록을 조선에 보내 왜적의 침략 상황을 탐색하도록 하다 = 252
    27. 조정이 좌의정 윤두수에게 도원수 김명원, 순찰사 이원익 등을 이끌고 평앙을 방어하게 하다 = 255
    28. 6월 11일에 어가가 평양을 떠나 영변으로 항하다 = 267
    29. 평양이 함락되다 = 278
    30. 어가가 정주로 향하다. 어가가 평양을 떠난 뒤로 인심이 무너져서, 지나는 곳마다 난민들이 창고로 쳐들어가 곡식을 약탈하다 = 283
    31. 어가가 의주에 도착하다 = 290
    32. 7월에 요동부총병 조승훈이 원군 5천 명을 이끌고 오다 = 301
    33. 7월 19일에 총병 조승훈의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였으며 유격 사유는 전사하다 = 308
    34.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함께 거제도 앞바다에시 적병을 크게 물리치다 = 311
    35. 전 의금부도사 조호익이 강동에서 병사를 모아 적을 치다 = 321
    36. 적병이 전라도를 침범하자, 김제군수 정담과 해남현감 변응정이 힘껏 싸우다 전사하다 = 323
    37. 8월 1일에 순칠사 이원익과 순변사 이빈 등이 군대를 이끌고 평양을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히고 후퇴하다 = 326
    38. 9 월에 명나라의 유격장군 심유경이 오다 = 328
    39. 경기감사 심대가 적에게 습격당하여 삭녕에서 죽다 = 334
    40. 강원도 조방장 원호가 구미포에서 적을 공격하여 섬멸시키다 = 344
    41. 훈련원부봉사 권응수·정대임 등이 향병을 이끌고 영천의 적을 공격하여 무찌르고 마침내 영천을 되찾다 = 346
    42. 좌병사 박진이 경주를 수복하다 = 348
    권2
    43. 이때 각 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 355
    44.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하고 이빈을 임금 계신 곳으로 불러 돌아오게하다 = 366
    45. 적의 간첩 김순량을 잡다 = 369
    46. 12월에 명나라가 대군을 보내다 = 373
    47. 이일을 순변사에서 해임하고 이빈이 다시 대신하게 하다 = 383
    48. 제독 이여송이 파주로 진군하여 벽제관 남쪽에서 적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개성으로 돌아와 주둔하다 = 385
    49. 제독 이여송이 평양으로 돌아가다 = 401
    50.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행주에서 적을 물리치고 파주로 이동하다 = 405
    51. 군량미의 님은 곡식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할 것을 청하니 임금께서 허락하시다 = 413
    52. 유격 심유정이 다시 한양에 들어가 적이 철군하도록 권유하다. 4월 7일에 제독이 병사들을 이끌고 평양에서 개성부로 돌아가다 = 423
    53. 4월 20일에 한양이 수복되다 = 439
    54. 5월에 제독 이여송이 적을 추격하여 문경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다 = 444
    55. 10월에 어가가 한양으로 돌아오다 = 461
    56. 명나라 사신 양방형과 심유경이 입본에서 돌아오다 = 474
    57. 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다 = 481
    58. 명나라가 병부상서 형개를 총독군문으로, 요동포정사 양호를 경리조선군무로,마귀를 대장으로 삼다. 양원·유정·동일원 등이 잇따라 조선으로 오다 = 496
    59. 8월 7일에 한산도의 수군이 무너지다 = 502
    60. 왜병이 황석산성을 함락시켜,안음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가 전사하다 = 511
    61. 이순신을 다시 기용하여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다 = 524
    62. 왜병이 남원부를 함락시키다 = 527
    63. 통제사 이순신이 진도 벽파정 아래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적장 마다시를 죽이다 = 537
    64. 적병이 물러나다 = 543
    65. 12월에 경리 양호와 제독 마귀가 기병과 보병 수만 명을 이끌고 경상도로 내려가 울산의 적 진영을 공격하다 = 549
    66. 무술년 7월에 경리 양호가 파면되고 새로 경리 만세덕이 이를 대신하다 = 556
    67. 10월에 제독 유정이 다시 순천의 적진을 공격하다. 통제사 이순신은수군을 이끌고 적의 구원군을 바다에서 크게 무찌르지만 이순신은이 전투에서 전사하다 = 567
    68. 이순신의 자는 여해이고 본관은 덕수이다 = 573
    69. 전쟁터에 있을 때에 통제사 이순신은 밤낮으로 엄중히 경계하여, 갑주를 푼 적이 없다 = 578
    녹후잡기
    70. 조짐 = 585
    71. 하늘의 뜻 = 590
    72. 용병(用兵) = 594
    73. 지형(地形) = 608
    74. 성(城) = 613
    75. 포루(砲權) = 623
    76. 장수(將帥) = 626
    77. 부교(浮橋) = 633
    78. 군사훈련 = 638
    79. 심유경의 편지 = 646
    80. 심유경의 변설 = 664
    연표(1542∼1945) = 667
    주석 = 685
    참고문헌 = 757
    도판목록 = 765
    찾아보기 = 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