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전시실※ 사이버 전시실은 규장각 명품 자료를 가상 현실하에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코너입니다. 실제 진행되고 있는 상설전이나 특별전과는 내용이 다르오니 관람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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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모습

전시모습

연표로 보는 규장각의 역사

★ 정조 이전의 규장각
1463년(세조 9) 세조대 양성지(梁誠之) 규장각 설치 주청
1694년(숙종 20) 숙종, 종부시(宗簿寺)에 소각(小閣)을 세우고 ‘규장각’ 현판 게시

★ 규장각과 정조 시대
1776년(정조 즉위) 정조, 규장각 창설
주합루(宙合樓) 건립
최초의 각신(閣臣)을 임명
1777년(정조 1)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전질(10,044권)을 청에서 구입
정유자(丁酉字) 15만자 주조
교서관(校書館)을 규장각의 외각(外閣)으로 합속(合屬)하고, 각신이 서적의 수집·정리·인쇄·포쇄(曝曬)·출납을 담당
1779년(정조 3) 규장각 검서관(檢書官) 직제 설치, 서얼(庶孼) 중에서 임명할 수 있도록 함
1781년(정조 5) 정조, 규장각과 홍문관에서 경연을 개최, 토론한 내용을 「관각강의(館閣講義)」로 편찬
한국본 도서를 서고(西庫)에, 중국본 도서를 개유와(皆有窩)에 보관
규장각 소장 서적의 목록인 「규장총목(奎章總目)」 편찬
규장각의 일기인 「내각일력(內閣日曆)」의 작성 시작
초계문신(抄啓文臣) 강제(講製)의 규정을 마련하고 1차 선발
강화도에 외규장각(外奎章閣) 기공
규장각 직각(直閣), 대교(待敎)의 선발 규정을 만듦
각신의 근무 규정을 제정
정조의 어진을 다시 제작하여 규장각 주합루에 봉안
1782년(정조 6) 강화도 외규장각 완성
임인자(壬寅字) 8만여 자 주조, 교서관에 소장
1783년(정조 7) 각신이 정조의 어록(語錄)을 기록한 「일득록(日得錄)」 작성 시작
1784년(정조 8) 규장각의 설치 연혁, 제도 등을 기록한 「규장각지(奎章閣志)」 완성
1785년(정조 9)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국정 일기 「일성록(日省錄)」을 규장각의 각신에게 편찬하도록 함
1792년(정조 16) 규장각에 대제학(大提學)을 설치
목활자 생생자(生生字) 제작
1795년(정조 19) 정리자(整理字) 주조

★ 정조 사후 규장각의 부침(浮沈)
1814년(순조 14) 「홍재전서(弘齋全書)」를 정리자로 간행
정조대 어정서(御定書)와 명찬서(命撰書) 목록 「군서표기(群書標記)」 편찬
1846년(헌종 12) 초계문신 제도 부활. 1848년에 또 한 차례 선발했다가 헌종 사후 중단
1864년(고종 1) 규장각에서 관리하던 어제, 어필, 선원보첩(璿源譜牒) 등을 종친부(宗親府)로 이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로 강화도 외규장각 소실. 어람용 의궤 등 소장 도서 프랑스군에 약탈(2011년 귀환)
1868년(고종 5) 경복궁 중건으로 규장각의 관아들도 경복궁 수정전(修政殿) 일대로 이전
1874년(고종 11) 종친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규장각의 제반 절차를 옛 규례대로 복구
1874(고종 12)~1877년(고종 15) 「이문원서목(摛文院書目)」, 「열고관서목(閱古觀書目)」, 「서고서목(西庫書目)」 등의 새로운 도서 목 록 제작. 이후 이들 서목을 바탕으로 색인집 「내각장서휘편(內閣藏書彙編)」 편찬, 중국에서 간행된 서양 관련 서적 다수 포함
1895년(고종 32) 규장각을 ‘규장원(奎章院)’으로 개칭하여 궁내부(宮內府)의 관서로 만들고, 산하에 교서사(校書司)와 기록사(記錄司)를 두었 다가 폐지.
1897년(광무 1) 규장원을 ‘규장각’으로 환원 개칭
1907년(융희 1) 궁내부 관제 개편, 폐지된 홍문관 업무를 통합하고 규장각 조직 확대
1908년(융희 2) 본래의 규장각 도서 외에 홍문관, 시강원, 집옥재(集玉齋), 사고(史庫) 등의 도서까지 관장. 새로 편입된 도서까지 총괄하는 도서 목록인 「규장각서목(奎章閣書目)」, 「집옥재서목(集玉齋書目)」 등을 편찬
1909년(융희 3) 규장각 도서를 ‘제실도서(帝室圖書)’라 명명. 「제실도서목록(帝室圖書目錄)」 작성, ‘제실도서지인(帝室圖書之印)’ 날인
규장각 도서의 일부를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으로 반출 (77종, 1,028책, 2011년 반환)
1910년(융희 4) 제실도서에 홍문관, 집옥재, 춘방(春坊: 시강원)의 장서 6만권 편입

★ 일제의 규장각 도서 장악
1910년 궁내부 및 규장각 폐지. 규장각 도서를 이왕직(李王職) 서무계 도서주임이 관리
1911년 규장각 도서를 조선총독부 도서로 점유, 총독부 취조국(取調局)에서 관리
경복궁 경성전(慶成殿)에 소장된 강화사고(江華史庫) 도서 5천권과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사고의 장서를 접수
사부(四部) 분류법에 의해 도서정리를 시도
1912년 도서관리 업무를 취조국에서 참사관 분실(參事官分室)로 이관
1913년 오대산본 실록 439책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반출
1916년 도서정리 1차 완료, 도서번호 부여
1919년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 간행
1921년 「조선총독부고도서목록(朝鮮總督府古圖書目錄)」 간행
1922년 규장각 도서를 조선총독부 학무국(學務局)에 이관
조선총독부, 규장각도서 중 의궤 79종을 반출하여 일본 궁내청에 보관 (2011년 반환)
1924년 도쿄제국대학에 있던 오대산본 실록이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 (잔존본 2006년 반환)
1928~1930년 규장각 도서를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3차에 걸쳐 이관. ‘경성제국대 학도서장(京城帝國大學圖書章)’을 날인

★ 서울대학교의 규장각 : 고문헌 자료와 연구인력의 결합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발족, 규장각 도서 16만여권 접수
고문서 조사 정리 사업(문리과 대학 부설 동양학연구소) 시작
1950년 6·25전쟁으로 규장각 도서 소개(疏開) : 부산 관재청(管財廳) 창고, 경남대한부인회 하층창고, 경남도청창고 등에 보관
장서각 소장 「조선왕조실록」(적상산본) 북한으로 반출
1953년 방종현(方鍾鉉) 교수 소장 도서(一簑 문고) 기증
1954년 부산으로 소개된 규장각도서와 귀중본이 서울로 돌아옴
1962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안에 ‘규장각도서위원회’ 설치
「규장각도서한국본서명색인」 완성
1963년 이병기(李秉岐) 교수 소장 도서(가람 문고) 기증
「규장각도서중국본서명색인」작성
1965년 「규장각도서한국본총목록」 간행
1969년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설립
1971년 이상백(李相佰) 교수 소장 도서(想白 문고) 기증 기증
1972년 「규장각도서중국본총목록」 간행
1974년 규장각 책판 현황조사
1975년 규장각도서관리실 신설
해방후 구입한 고도서와 일사, 가람, 상백, 경제문고의 고도서가 규장각도 서로 편입 규장각도서 유일본에 대한 마이크로필름 촬영 작업 본격 적으로 시작
1977년 학술지「규장각」창간
1980년 학술지「한국문화」 창간
1981년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 간행
1982년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 간행
1985년 「조선왕조실록」(태백산본) 848책, 부산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
1988년 영문학술지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창간
1990년 규장각 신축 건물로 이전
1992년 규장각도서관리실이 중앙도서관에서 분리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독립
2005년 규장각 증축 완료
2006년 한국문화연구소와 규장각이 통합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출범
2006년 일본 도쿄대학으로부터 오대산본 실록 47책 반환
2007년 연구원 내에 국제한국학센터 개소
2008년 인문한국(HK) 사업단 발족
2011년 규장각 문화재 보존수리사업 시작
2013년 21세기 신규장각 사업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