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전시실※ 사이버 전시실은 규장각 명품 자료를 가상 현실하에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코너입니다. 실제 진행되고 있는 상설전이나 특별전과는 내용이 다르오니 관람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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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규장각과 정조시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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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홍재전서 弘齋全書
정조(正祖) 저, 1814년(순조 14), 184권 100책, 활자본(정리자 整理字), 34.5×22.1cm 청구기호 : 奎 572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 중 활자본이다. 1814년(순조 14)에 규장각에서 편집·간행한 것으로, 정리자로 인쇄하였다. 1800년 6월 정조 서거 후 필사본 『홍재전서』들을 종합·정리하여 편찬했으며, 총 184권 100책에 달하는 거질이다.

홍재전서 보관용 나무상자

홍재전서(弘齋全書) 보관용 나무 상자
나무에 옻칠, 38.7×24.8×52.8cm

정조의 어제(御製)를 모은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보관하기 위해 제작한 나무 상자로 표면에 검은 옻칠을 하였다. 상·하단 선반에 책을 눕혀서 여러 권씩 쌓아 보관하게 만들었다. 상자 뚜껑에 ‘정종대왕어제집(正宗大王御製集)’이라고 책 제목을 새기고, 손잡이를 달아 위를 향해 밀어 열도록 하였다. 1814년(순조 14)에 정리자(整理字)로 『홍재전서』 활자본을 간행한 뒤, 이를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홍재전서

홍재전서 弘齋全書
정조(正祖) 저, 1787년(정조 11), 63권 38책, 필사본, 32×19.7cm 청구기호 : 奎 4465

정조의 문집이다. 규장각에는 필사본과 활자본 등 2종의『홍재전서』 가 소장되어 있다. 필사본은 1787년(정조 11) 무렵에 규장각에서 정리·편찬한 것이다. 사자관(寫字官)이 질이 좋은 고급 종이에 정성들여 필사했고 표지를 비단으로 장정한 것을 볼 때, 정조에게 올린 어람용 원본으로 추정된다.

소학제가집주

소학제가집주 小學諸家集註
이이(李珥) 편, 1694년(숙종 20), 2책, 활자본(무신자 戊申字), 36.3×23.7cm 청구기호 : 奎 11680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가 주희(朱熹)의 『소학(小學)』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주석 중에서 긴요한 것을 선별하여 편찬한 책이다. 전시된 책은 영조가 1736년(영조 12) 1월에 첫돌을 맞은 사도세자에게 내려준 것으로, 사도세자는 1753년(영조 29) 9월 정조의 첫돌을 맞아 이 책을 다시 정조에게 전해주었다. 본서의 앞표지 이면(裏面)에는 이상과 같은 이 책의 전수 과정을 서술한 글과 칠언시(七言詩)가 기록되어 있다.

능허관만고

능허관만고 凌虛關漫稿
사도세자(思悼世子) 저, 1814년(순조 14), 7권 3책, 활자본(정리자 整理字), 34.7 × 22cm 청구기호 : 奎 1571

조선 영조의 둘째아들 사도세자 이선(李愃)의 시문집이다. 아들인 정조가 직접 교열하고 7권 3책으로 편성하였다. 규장각에서 교정한 후 1803년 완성한 책을 올렸으며, 1814년 ‘경모궁예제(景慕宮睿製)’라는 이름으로 『홍재전서(弘齋全書)』와 함께 정리자로 인쇄 간행하였다. 사도세자에게 왕이 될 만한 충분한 자질과 역량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게 편집하였다. 일상생활의 느낌을 노래한 시문, 대리청정 기간에 지은 글, 경전 및 역사서를 공부하면서 생긴 의문점과 그에 대한 사도세자의 해석을 볼 수 있는 서연(書筵) 고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중록

한중록 閑中錄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저, 19세기, 6권 6책, 필사본, 28.8×18.2cm 청구기호 : 가람古 813.54-H994h

1795년(정조 19)에서 1805년(순조 5) 사이에 혜경궁 홍씨가 쓴 회고록이다. 혜경궁 홍씨가 9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한 후 궁중에서 보낸 50여 년의 일생을 환갑에 이르러 회고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에 친정 조카의 요청에 따라 써 준 1795년 글과 후일 순조에게 보일 목적으로 쓴 1802년, 1805년, 1806년의 글을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1806년 글은 1802년 글의 부록에 해당되므로 크게 보아 세 차례에 걸쳐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섬네일

정조동궁일기 正祖東宮日記
시강원(侍講院) 편, 1762~1776년, 7책, 필사본, 33.6×23.2㎝ 청구기호 : 奎 12839

정조동궁일기는 정조가 1762년(영조 38)에 동궁(東宮)이 된 이후부터 1776년 즉위 전까지 시강원(侍講院)에서 편찬한 일기이다. 일부 내용이 결질(缺帙)된 영본(零本)이다. 전자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 서거 이후 세손 정조가 동궁이 되면서 관련된 여러 제도들이 정비·운영된 과정, 동궁 시절 정조의 학습 내용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즉위 이전 정조의 동궁 생활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자료이다.

섬네일

만천명월주인옹자서 萬川明月主人翁自序
정조(正祖) 저, 1첩, 탁본, 36.8 × 23.3cm 청구기호 : 奎 10166

1798년(정조 22)에 정조가 자신의 호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짓고, 그 뜻과 내력을 설명한 글이다. ‘만천명월주인옹’은 ‘모든 강에 밝게 빛나는 달과 같은 존재’란 의미로, 군주를 가리킨다. 정조는 이 글에서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달과 강물, 태극과 만물의 유비를 통해 설명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군주가 중심적 존재가 되고, 군주는 또 세상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고르게 활용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정조는 이 글을 지은 뒤 조정의 신하 수 십 명에게 각각 써서 올리게 한 뒤 새겨서 궁궐의 생활공간 곳곳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